2010년 7월 10일 토요일

'생각의 좌표' by 홍세화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 -프리모 레비-

뜨거웠던 월드컵의 열기는 그 막바지를 향해 (정점은 16강 탈락과 함께 이미 지났지만) 달려가고 있는데 반해 지난 지방선거 이후 MB 정권에 대한 심판의 열기는 이제 본격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한것 같다.
세종시 수정안 국회 부결,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대통령 사조직 영포회 게이트, 공중파에 등장하기 시작한 4대강 관련 뉴스, 천안함과 관련된 네티즌 글들을 삭제하라는 압력을 국내포털들이 일제히 거부한 일 등.. 측근비리가 터져나오고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 레임덕이 이미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굳이 지난 정권의 예를 들지않아도 잘 알것이다. 특히, 천안함 사태와 지방선거를 전후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과 질문을 던지게한 시간들이었다. 물론,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고 강요 받으며 지금껏 살아왔지만 그 사명이라는게 '그들'에게만 유난히 풍성하다거나 '그들'이 그 사명을 이행하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새삼 놀라운것이 없지만 도대체가 수십년을 살아오면서 아직도 진실을 바로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많음에 놀라고 또 놀라울 따름이다.

'무지와 무관심은 그 자체로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몰상식의 자양분이며 영악한 자들이 뻔뻔하게 군림하는 토양이 된다.'

그래.. 모르는건 죄가 아니지.. 다만, 모르면서도 알려고 하지않는 게으름과 천박함이 문제일뿐.. 그런데, '진실을 바로보기 위한 질문'에 '따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수평적 관계의 대화와 토론의 부재 때문인데 우리 사회에서 합리성의 추구나 토론문화가 발전하지 못한 데에는 '미친 교육'의 탓이 크지만 그 이전에 각 가정에서 '왜?' 라는 질문을 죽인 탓도 무시할 수 없다. '왜?' 라는 질문을 통해 논리를 끌어내고 그것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는 힘과 권위로 누르거나 다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사회에서 합리성 추구나 토론문화는 설 자리가 없다. 사적 관계에서도 주로 명함이 가진 힘과 권위가 작용하는 것 역시 '왜?' 라는 질문이 죽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내 나이 때들의 유년시절이 그랬겠지만 나 또한 그런 부분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탓일까..?그런 불합리한 억압이 묘한 반발감으로 작용해 지금의 비판적인 성격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올바른 양육 태도가 아니라는걸 잘 알기에 올해들어 부쩍 궁금한게 많아진 우리 아이들에게는 질문하는 거의 모든걸 내가 아는 지식을 총 동원해 자세히 설명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이 책 전반에 흐르고 있는 저자의 질문이다.
'생각하는 동물인 나는 지금 갖고 있는 내 생각을 고집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은 태어났을 때엔 분명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지배할 내 생각은 어떤 경로로 내 것이 되었을까?'
저자는 '음식물'과의 비교를 통해 알기쉽게 설명한다.
'.. 내가 내 몸의 주인이므로 건강을 유지하려고 입 안에 넣은 음식을 선택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내 허락을 받지 않고는 아무도 내 몸을 범접할 수 없다. 나 말고는 내가 어렸을 때의 부모님뿐이다. 부모님은 내 몸에 좋거나 좋다고 판단되는 것만 내 입 안에 넣었다. 나 또한 내 몸에 좋거나 좋다고 판단되는 음식물만 내 입 안에 넣는다.
이에 반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내가 자라는 동안 꾸역꾸역 들어온다. 나에게 다가오는 생각들이 내 삶을 위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할 수 없는 동안에도 내안에 스며들어왔다. 내 안에 음식물을 넣은 주체는 나와 나를 위하는 부모님뿐이지만, 나에게 생각을 집어넣은 주체는 나와 내 부모, 교사, 이웃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자유롭기 어려운 이 '사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안에 채우는 '생각'이나 '주장' 또는 '이념'은 이 사회에서 강조되는, 이 사회를 관통하는 것들로써 이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요구하는 '지배적인 그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 안에 생각을 집어넣는 실제 주체인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춰 나가면서 기존에 형성된 생각을 끊임없이 수정하여 나의 주체성을 확장하지 않으면 진정한 자유인도, 내 삶의 진정한 주인도 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의 가치를 되살리고 비판적인 안목을 키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방법을 제시한다.

1. 폭넓은 독서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 중 책을 남긴 사람의 생각을 내가 '주체'적으로 참조하는 것"

2. 열린 자세의 토론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을 열린 자세로 참조하고 '주체'적으로 소통하는 것"

3. 직접 견문
"오감을 가진 주체로서 다양한 경험과 여행 등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직접 보고 겪고 느끼는 것"

4. 성찰
"폭넓은 독서와 열린토론 그리고 직접 견문을 통해 만나는 뭇 생각들이 소우주와 같은 나의 의식세계 안에서 서로 다투고 비벼지고 종합되고 정리되는 과정"

'위의 네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독서다. "사람은 그때까지 읽은 책이다"라는 말이 있다. 제도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갖게 된 생각은 주체적이지 않다. 독서와 토론, 직접 견문과 성찰은 내가 주체적으로 행하는 것이지만, 제도교육과 미디어에서 나는 주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객체이며 대상일 뿐이다. 세상 사람들 중 책을 읽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소수다. 문제는 과거에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날엔 책을 읽지 않아도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엔 제도교육이 보편화 되어있고 미디어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사람들의 의식세계는 빈 채로 남아 있지 않고 채워진다. 국가권력이 장악한 제도교육과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미디어에 의해 넘칠 정도로 채워지는 의식세계는, 특히 한국처럼 제도교육이 민주화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스스로 책을 읽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지배세력이 요구한 것만으로 채우게 된다. 활성화된 독서와 토론으로 사회구성원들이 주체적으로 의식을 형성하여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춘다면, 그만큼 민도가 높아지고 성숙한 사회가 될 테지만 지배세력으로서는 지배하기가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달갑지 않은 일일수 있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주체적 자아, 진정한 자유인을 형성하는데 있다면 학생들에게 독서와 토론, 직접 견문과 성찰의 기회를 갖게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때, 오로지 암기와 문제풀이 능력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한국의 제도교육은 윤리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의 일상에서 폭넓은 독서, 열린 토론, 직접 견문, 성찰의 기회를 완벽하게 빼앗고 있기 때문이다.'

내 가치관이라는 것이 좋게 말하면 진보요, 굳이 수구언론의 나쁜 분류법에 따르면 좌파에 가깝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홍세화'라는 사람과는 코드가 잘 맞는걸 감안하더라도 이 책의 내용은 놀라우리마치 정확하게 내 생각을 표현해 주는것 같아 읽는내내 맞장구를 치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계적 인간' 에 대한 한탄과 분노, 좌절.. 이 모든걸 치열한 자기성찰로 보듬으려는 저자의 고뇌들.. "그래서? 그런다고 달라져?" 라고 말하지 말자.. 그리고 잊지말자.. 행동하는 그들이 있었기에 이렇게나마 누리고 사는 것을..



추신
이 글을 올리는 시점에 트윗 상위 멘션 (천안함부동산)을 보면 그동안 '정부'와 '언론' 이라는 곳에서 줄기차게 주장했던 '사실'이라는 것들이 하나, 둘 거짓으로 밝혀지는 걸 목도하고 있으니 다시한번 책의 내용이 무겁게 다가온다..

댓글 14개:

Passion :

1빠..
어쩌죠? 나는 "열린 자세의 토론"에만 열중하고 있는것 같은데..
1~4의 과정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면 그나마 1번일 것 같네요. 1번만 제대로 해도 2, 3, 4번은 혼자서 가능할 것 같다는...
근데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1번"이네..
0, 1, 2, 3으로 아님 가, 나, 다, 라 로 수정해주면 안되겠삼?

tomyou74 :

'1번'을 '가'로...
합조단 하는거 보고.. ㅎ
근데.. 열린 자세로 하는건 맞지..?

Passion :

고생해서 홈피 바꾼게 이거임? ..
일단 대화를 시작하면 열린 것 아닌감? ..

tomyou74 :

1. 이거임.. ㅋ

2. '거울'에게 물어봐야지~ ㅎ

안정선 :

안다는 것과 경험했다는 것..그차이가 요즘 저의 화두입니다...

안정선 :

담엔 어떤 주제-혹은 하나의 단어, 책 한권, 음악 한곡일지라도-를 가지고 만나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어 봄 어떨까요...?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봅니다.
죽어가는 나를 깨우고 싶네요..*^^*

tomyou74 :

'깨닫지' 못하고 '아는' 것은, '나'를 만들지 못하고 '관계'에 연연하는 것 만큼이나 허망 합니다..
혹, 며칠 전 꺼내신 얘기의 연장선인가요..? 그 자리에선 즉답을 안했지만..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동한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안정선 :

???제가 벌써 치매가 왔을까요????
며칠전 무슨얘기를 제가 했남요???
진짜 기억이 안나요.......
제가 읽은 tomyou님의 글 중에서 제일 난해한 글이군요...ㅠ.ㅠ
머리가 동하는 것과 가슴이 동하는 차이는 뭥미??

안정선 :

혹 전날 밥 잘먹고 차 잘마시고 날궂이 한거 말하시는 건가요??
ㅎㅎ설마요..!내가 내 무덤을 또 다시 파겠어요 ㅡ.ㅡ;
건 아니구 그냥 술 한잔 기울이며 모두에게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한번 도란도란 패가며 이야기꽃을 피워보자는 거지요.
그러면서 녹슨 머리에 기름칠도 해보구, 메마른 가슴에 열정도 담아보구, 한 수 배워보자는 거지요..
일테면 술먹는 스터디쯤???


ㅎㅎㅎ 아! 역시 오버인가요....!

안정선 :

경험없이 깨달아질 수 있을까요?
관계형성이 없는 나 또한 존재한다라고 할 수 있나요??

tomyou74 :

3연타 댓글은 최초네요.. ㅎ~
하나하나 풀어 볼까요~~ ^^

1. 머리는 문제의 해결을.. 가슴은 영혼의 표현을.. (음.. 제가 봐도 좀 난해하군요.. ^^;)

2. 날궂이 = 무덤 = 녹슨 머리 = 메마른 가슴 = 술,,, 아! 역시 술이군요....! ㅋㅋ

3. 깨달음이란 내려놓는 겁니다.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자신을 상대로 부질없는 싸움을 계속하면서 지녔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됩니다. '내려놓는'다는 것.. 외적 경험보단, 내적 성찰로 가능한 것이겠지요..

4. "나 자신이 먼저입니다. 나를 받아들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차원 높은 동정심은 이기심이 발전한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혐오가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동정하기 어렵습니다. 동정심이 뿌리내릴 수 있는 터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달라이 라마-


써놓고 보니.. 제가 오버인듯.. ㅋ~^^

안정선 :

예쁜돌담을 포기해야 한다는
거로군요...*^^*
삐뚤린 돌맹이 한장에 대한
번뇌보다는요..
음...내공이 아직 부족한가 봅니당~~~

안정선 :

사진은 약올릴려고 보낸거 맞슴다.

tomyou74 :

예쁜 돌담... 어디, 제멋대로이지 않은 돌이 하나라도 있던가요.. 삐뚤린걸 안삐뚤리게 만드려는 마음이 항상 문제지요..

그리고.. 사진은.. 약오르다니요~~
안나온걸 잘나오게 만드려는 뽀샵질이 항상 문제지요.. ^^;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