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4일 금요일

'Variations on the canon' by 류승민

언제부턴가 크리스마스때 꼭 들려준다며 틈틈이 연습해온 곡이 바로 그 유명한 'Variations on the canon by Pachelbel'. 1982년 발표된 George Winston의 피아노 솔로 앨범 'DECEMBER'에 수록된 원곡이 너무나도 서정적이고 아름다워 학창 시절부터 즐겨 들곤 했는데, 앨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딱 이맘때의 겨울 풍경과 그 분위기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선율을 듣고 있으니.. 이곳 저곳 새겨놓은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오늘 이 순간 나도 그리고 재경이도.. 아빠와 엄마를 위해 준비해온 곡을 훌륭하게 연주하고 있는 승민이의 멋진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 
'Variations on the canon by 류승민' <= 클릭!

요즘들어 부쩍 바이올린 켜는게 좋아진다고 얘기하곤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피아노 연주는 승민이가 하고 싶어하는 일과 중 늘 상위권을 차지하는 아주 중요한 활동이다. 주위를 보면 취학 전까지 열심히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되는데, 혹여 악기를 연주하는 걸 단순한 취미 활동으로 과소 평가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연주 실력은 전공자에게나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문학이 마음의 양식이라고 한다면, 예술은 평생 아이에게 온전히 녹아들어 한 아이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깊이있게 만들어주는 영혼의 양식과 같은 것이다. 특히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 하지만 수학의 공식처럼 규칙적인 음표와 기호를 분석하고 해석하며, 규칙에 맞게 리듬을 타고 박자를 맞춰 전체를 풀어가는.. 그렇기에 일찍이 아인슈타인은 음악과 수학의 연관성에 대해 지적하면서 음악을 잘하는 아이들은 수학을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실제 승민이의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선 악보를 꼼꼼히 분석한 뒤 음표 하나, 기호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수없이 많은 반복을 통해 마치, 공식을 이용해 정해를 찾아가 듯 집중해서 하나의 연주를 완성해 나가는 모습이 수학 문제를 해결할 때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고 하면 나만의 착각일까..?
"암튼, 피아니스트 류, 오늘의 연주는 너무나 멋졌어~ (쵝오!) 다음 신청곡은 Andre Gagnon의 'Les Jours Tranquilles' 를 부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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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2일 수요일

'오리진이 되라' by 강신장

"내가 시간을 버렸더니 이제 시간이 나를 버리는구나." -리처드 3세-


'번데기'
완전 변태를 하는 곤충의 애벌레가 자란벌레로 되는 과정 중에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아니하고 고치 같은 곳의 속에 가만히 들어 있는 몸. 겉보기에는 휴식 상태 같지만 애벌레의 기관과 조직이 자란벌레의 구조로 바뀌는 중요한 시기..

"PC방 가는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
순간, 멈칫 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의 피가 온통 머리로 치솟아 터져버릴것 같은데.. 부르르 떨기만 할 뿐, 몸도, 입도 얼어버린 건 매서운 추위 때문만은 아닐게다..
반복되고, 반복되고, 반복되고...
먹물이 번져 가 그 흔적이 아름다운 그림이 되고,
물이 끓어 올라 그 열이 훌륭한 에너지가 되지만,
도대체, 얼마나 더 번지고, 얼마나 더 끓여야 그리 되는 것인가.. 먹물이 번져 먹지가 되어 온통 까맣게 변해 너덜너덜 찢어지고, 물이 끓어올라 기화 되어 온통 까맣게 태워 냄새가 나고 연기가 피어 오르면, 그때 알게 될까..?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두렵다.. 소진 되어가는 인내심의 끝을 보게 될까..
슬프다.. 그럼에도 부여잡고 울분을 집어 삼켜야만 하는 현실이.. 천성이..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예외없이 겪게되는 방황과 혼란의 시기가 혹시, '번데기'와 같은 상태가 아닐까..? 미숙하고 볼품없이 그저 생존하는게 목표인 연약한 애벌레 시기에는 너무나 순종적이고 통제 가능하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겪게되는 자기만의 공간인 고치 속에서 그 어떤 외부의 간섭과 영향을 받지 아니한 채, 외롭고 특별한 시간을 보낸 후 눈부시게 찬란한 날개를 펼치며 넓은 세상으로 비상하는 나비..
근데.. 일단 고치 속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는 외부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면, 고치 속에 들어가기 전 애벌레 시기에 사실상 거의 모든게 결정 되어 지는 것은 아닐까..? 다시말해 어떤 나비가 되어, 어디까지 비상해서, 어떻게 살아갈건지의 목표와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있지 않은 상태라면, 고치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너무나 길고, 너무나 힘들고, 너무나 무의미한 시간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결과는 더욱 더..      

"왜, 다른 애들은 다 가는데 나는 PC방에 가면 안돼?"
"왜, 다른 애들은 다 여자친구 사귀는데 나는 안돼?"
"왜, 다른 애들은 다 스마트폰 가지고 다니는데 나는 안돼?"
왜, 왜, 왜, 다른 애들은.....

특별한 아이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높은 수준에 이른다.
그리고 특별한 아이들은 가장 힘든 순간에 훌륭한 선택과 결정을 한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을 함으로써 초래되는 또래 집단이나 다른 이들의 조롱과 비난, 압박, 이질감, 따돌림 등을 아무런 외부의 도움 없이 자기 스스로 극복하고 자신의 신념에 충실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아이들은 거의 없다. 
따라서, 아이가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제때 가르치고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생각들이 있다. 그 생각들은 남다른 것이며, 신념이 녹아있는 것이며, 강렬한 의지가 담긴 '가치 있는 생각'이다. 나는 이처럼 특별한 생각은 특별하게 불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한 그것의 이름은 바로 '소울 Soul' 이다...
소울의 높이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것은 우리의 관점을 껍데기에 머물도록 놔두지 않고 근원과 본질로 이끌기 때문이다. 소울이 높으면 자잘한 것들에 발목 잡히지 않고 내가 닿을 수 있는 최고 높이까지 단번에 뛰어오를 수 있다."

우리의 가슴에 어떤 '소울'이 들어 있는가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소울의 수준이 낮으면 세상의 소음에 쉽게 흔들리고, 휘둘리고, 헤매다, 결국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  
군중 심리에 맞설 수 있을 만큼 강한 자기만의 행동 기준,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이소울'에 이르는 진정한 길일 것이다. 


2010년 12월 17일 금요일

'영민耳讀經'

제아무리 소심하고 겁많은 사람일지라도 예외일 순 없다. 마치 출고될 때부터 이미 깔려있는 기본 어플 마냥, 따로 배운 기억도 없지만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여겨지는 글로벌스탠다드한 동작과 음률이 일단 시작되면, 그 짧은 시간 감춰 두었던 '그것'을 한치의 망설임 없이 정확한 타이밍에 꺼내놔야만 한다는 것을, 곧이어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제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일지라도, 설사 그것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내 의지대로 통제 가능한, 따라서 신이 나에게 부여해준 고유한 권리를 행사함으로서 얼마든지 결과를 180도 바꿔버릴 수 있는 만고불변 내 소유의 것 일지라도, 그것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따위의 행동은 절대로 용인될 수 없다는 사실도..

이것은 도덕과 정의의 묵시적 구현이요, 수많은 논란과 이견에 종지부를 찍고, 선명한 합의와 결론에 도달하게 만드는 행위 예술과도 같으며, 일찍이 이것을 모방하고 또 능가하기 위한 다양한 변종(이를테면 '묵찌빠'나 '우라무라때'와 같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것만큼 단순하고 명쾌하며, 차별없이 공평하며, 그 어떤 도구의 도움 없이도 신속한 의사 결정이 가능한 쿨~한 수단은 못봤으니, 이것이야말로 전무후무한 最古의 중재자이고 판정관이며, 우리 인류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남아있을 위대한 행위 유산이 아니던가..

하지만,'論理'를 무력화 시키는 건 'Non理'만한게 없고,'理性'을 혼돈에 빠뜨리는 건 '異性'의 몫이듯, 자기가 이기면 당연히 그 결과를 수용해야 되고, 자기가 지면 뻔뻔스럽게 결과를 외면하고 부정하며 그것도 모자라 곧바로 떼쓰기 모드에 돌입하는 '류영민'의 행태는, 이 모든 대자연의 섭리를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의 목적 달성만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극단적 이기주의자의 모습으로, 아빠인 내가 봐도 자증(짜증의 순화 ㅋㅋ)나는데 오빠인 승민이는 오죽하랴.. 하지만 그런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나름 조목조목 영민이에게 설명하며(사정하며?ㅋ) 진지하게 화내는 승민이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 한장면처럼 사건도, 상황도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연기도, 즐겁게 어이없고, 기쁘게 우스우며, 얄밉게 귀여운, 다시 보고 싶은 명장면을 연출했기에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

하긴, 그동안 영민이가 창작해낸 어이없는 말과 행동들을 모두 묶어 책으로 낸다면, 아마도 안드로메다급 유머집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않을까? ㅋㅋ
"난 오늘이 수요일인 줄 알았다.." 월요일 방과후 수업 땡땡이 친게 들통나자. (바로 전날 일요일이라고 하루종일 놀았으면서..)
"비가와서 매점이 문닫았을까 그게 걱정이다.." 봉화산에 오르는 중,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자. (비가 오든 말든 오로지 매점을 향한 저 집념..)
"새치기 하지마!" 달리기 시합 중, 늦게 출발한 승민이에게 거의 따라잡히기 직전에. (뭐하러 달려? 그냥 줄지어 걷지..)
"음.. 열다섯 마리..?" 봉화산에 오는던 중, "이 산에 개미들이 몇마리나 살고있을까?" 라는 질문에. (제 눈앞에 보이는 것만 수십, 수백 마린데..)
"뻥~치시네.." 전날 사놓은 아이스크림을 이미 다 먹어버렸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뻥~ 소리가 나도록 엉덩이를 때려줄까 보다..)

다름의 가치와 기대에 너무나 부응한 나머지, 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유난히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하는 영민이.. 하지만, 온전하게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 잠시 잠깐 스쳐가는 자유의 흔적들이 훗날 멍에로 남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부단히 노력하며, 오늘도 가슴속에 되새겨 본다..'부드러우면서도 확고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영민耳讀經'
머리 풀이 더욱 무성해지면, 그때는 좋아지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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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2일 일요일

'안나 카레니나' by 레프 톨스토이

"사회성이란 말이야,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고개 숙일 줄 아는게 사회성이야~" 몇년 간의 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그리 변하지 않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늘 재밌고 유쾌하며 배울점도 참 많은 그런 멋진 사람이었는데..
삶의 고단함과 그 고단함을 유발하는 부당함 조차, 뭐 어쩔 도리 있겠냐는 투로 그저 관망하고 순응하며 살고 있음을 애써 부인하지 않겠다는 듯, 아픈 과거가 되풀이될까 두려워 불안하지만 꿈이 있는 미래를 안전하지만 꿈이 없는 현재와 맞바꿔 버린 겁쟁이처럼.. 너무나 닳고, 낡은 생각을 친숙한 말투와 표정으로 얘기하는 그 기괴함이란.. 서글펐다.. 무엇보다도 초라하고 비루하기까지한 그런 삶의 태도를 대물림 하려는 모습에선, 너무도 참담한 기분에 악! 비명이라도 내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누군가 묻는다..
"경험없이 알 수 있나요..?"
그리고,
여전히 묻는다..
"학교를 안다니면 사회성은 어떡하죠..?"

스테판 아르카디이치와 돌리
브론스키와 안나 카레니나
레빈과 키티
그리고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얽히고 섥힌 관계들.. 사랑, 야망, 기쁨, 환희, 권태, 후회, 원망, 복수 그리고.. 죽음...
<전쟁과 평화>와 함께 톨스토이 최대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 러시아를 배경으로 동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인물들의 내면 세계를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고 정확하게 묘사하여 인간과 삶에 대한 수준 높은 통찰과 철학을 보여주는, 읽는 것 자체로 높은 성찰에 이르고 깊은 자각과 깨달음에 도달하게 만드는 시대를 초월한 인류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러한 문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실로 다양한 어휘와 풍부한 표현력이고, 다양한 인간과 풍부한 감정들이며, 다양한 경험과 풍부한 가르침이다.

내가 바라는 사회성이란 '타인의 감정을 잘 아는 것'이고,
내가 바라는 사회성이란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는 것'이며,
내가 바라는 사회성이란 '타인의 감정을 잘 보듬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안에서 '타인'을 느껴보고, '타인' 속으로 내가 들어가 보는 것..
단조로운 현실 세계에선 접하기 어려운 경험과 관계를 이와 같이 훌륭한 문학 작품을 통해 만나보자. 혹, 멀리보는 慧眼 과 깊게보는 海眼 을 동시에 얻게 될지도..


추신
"이모부, 초등학교 때는 세계명작을 안읽는게 좋을것 같아요."
토론 시간에 연수가 불쑥 꺼낸 말이다.
"응? 왜에..?"
"제가, 아까 이모집에 갔을때 책 읽으려고 책장을 살펴보는데 글쎄, 초등학생용 안나 카레니나가 있는 거예요~"
"초등학생용으로? 이 책이?"
"예! 근데, 읽어 봤더니 내용을 얼마나 줄여 놨는지 앞뒤도 안맞고 엉망이더라구요~"
"..."
방대한 원작을 달랑 한권에, 그것도 큼직한 활자를 성의없는 그림과 함께 담아 낸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설사 요행히 핵심을 잘 추려낸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다른 건 차치하고, 주인공인 안나가 불륜을 저지르고 그 불륜을 유지하기 위해 남편과 자식도 버리고 종국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는, 진정한 사랑과 자유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초등학생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또 어떻게 이해를 구할런지.. 아니면 19세기말 격변하는 러시아의 사회상과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찬 상류층의 사교 문화 그리고 붕괴 직전인 농노제의 구조적 한계를..? 아서라, 체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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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5일 일요일

'염불보다 잿밥..?'

오늘은 매년 초에 열리는 뫼비우스 전국 대회에 출전하는 자격이 주어지는 예선이 각 지역 해당 지부에서 열리는 날이다. 2년전 첫해에 승민이가 예선을 1등으로 통과해서 순천 대표로 큰 기대를 가지고 당당히 서울로 올라가 본선 대회에 참가했지만, 난생 처음 가보는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아이들과 큰 규모의 경기를 치른다는게 어린나이에 버거웠을까..? 선생님도 부모인 우리도 전혀 예상치 못한(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는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법이다..) 작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아쉽게도 첫번째 도전은 그냥 참석하는걸로 만족하며 다음 대회를 기약해야 했었다. 나름 큰 경험과 소중한 교훈을 얻어 다음번엔 더 잘하리라는 다짐과 함께..
그러한 실패(?)를 밑거름으로 꾸준히 준비해서 작년에도 1등으로 출전 자격을 획득했지만, 하필 전국에 휘몰아친 신종플루의 광풍 속에서 전국 대회가 무기 연기되는 바람에 이번에도 그냥 지역 1등으로 만족해야 했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내년 1월 11일 서울 건국대에서 열릴 뫼비우스 본선 대회에 참가할 지역 예선이 있는 날이다. 한 2주 전부터 거의 매일 밤 잠들기 전 한시간 정도를 온 가족이 할애해서 올해의 경기 종목인 'fits' 와 'take it easy'를  함께 연습하며 준비를 해왔었는데, 막상 경기가 열리는 오늘 중요한 선약 때문에 현장에서 응원해주지 못하는게 아주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이번에 1등을 하게되면 서울에는 꼭 함께 가리라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승민이에게 "승민아, 아빠 없어도 잘할 수 있지?" 라고 물으니 "응... 근데, 1등 못하면 어떡해?" 라며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 관용구와도 같은 '승민이표 걱정'을 예외없이 꺼내든다. (하지만 묻는 표정과 말투는 걱정이 되서라기 보다는 기대감에 가득찬 어리광에 가깝다..^^) 더구나 그 질문에 대한 아빠, 엄마의 대답이 늘 한결 같다는 건 그동안 수없이 많은 반복을 통해 이제는 토씨 하나 틀리기 어렵다는 걸 저 스스로도 잘 알고있지 않은가.. "승민아, 1등, 2등은 중요치 않아. 중요한 건 최선을 다하는 거야. 요령이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승민이 네가 아는만큼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거야. 알겠지?" 아빠가 그렇게 얘기할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뒤돌아 뛰어 나가는 승민이를 보면서 나지막히 속삭인다.. "승민아.. 자신있지?"

전화벨이 울린다. '정재경'.. 오후 내내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끊임없이 시간을 가늠하고 있었지만.. 15시 57분, 숫자를 눈으로 확인하며 이제 막 경기가 끝났음을 직감했고, 속도로는 이 세상 그 어떠한 것도 따라오지 못할 이기를 서로의 귀에 대고 일방의 결과를 전송하고, 결코 다르지 않을 쌍방의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말하는 입을, 얘기하는 눈을 보지 않아도 볼 수 있고 같이 있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건, 오랜 시간 하루도 빠짐없이 이루어낸 동기화의 산물인가..

그나저나 2011년 1월 11일 이면 화요일인데.. 방학이라 가장 바쁜 때이기도 하고.. 하지만,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빠의 부재가 주는 심리적인 위축을 생각한다면.. 휴~ 미리미리 계획을 잡아야겠다..


추신
염불보다 잿밥..? 승민이가 저녁에 털어놓은 1등의 목적이 서울에서 열리는 본선대회 진출은 뒷전이고, 63빌딩 방문이 주된 목적이었다는..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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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3일 금요일

'승민이의 눈물'

울먹울먹 참는 듯 하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억울한 모양이다. 저번주에는 현빈아빠가 일이 있어 경기에 불참하는 바람에 부득이 평소와 다르게 편을 짜는 과정에서 작은 소란이 일때부터 불길하더니, 전반이 끝난 뒤 서로의 플레이에 대해 질책하며 불평하다 급기야.. 한 명이 집에 가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설마, 돌아오겠지.. 하며 가만 놔뒀더니만 그냥 횡~하니 가버리더라는.. ㅡ.,-;) 늘 하던대로 팀을 나눴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 (이것은 사전에 아무런 교감 없이 불참한 사람 때문..? 형, 책임져요~ ㅋㅋ)
근데, 어제는 그 전날 학교에서 친구와 다투다 눈 언저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한 학현이가 불참해서 또 다시 새롭게 팀을 편성 했는데.. 현빈이만 자기 아빠 편을 원하고, 나머지 모든 애들이 공교롭게도 내 편을 원해서(하여튼, 이노무 인기는.. ^^;) "얘들아, 봐봐~ 저쪽은 2명이고 우리는 7명이면 어떻게 게임을 하겠니?  물론, 이모부가 좋아서(ㅋ) 또, 이기고 싶어서(ㅋㅋ) 그러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다~" 한참을 알아듣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도 소용없고, 급기야 민지가 "이모부, 저는 꼭! 무슨일이 있어도 이모부 편을 해야되요!" 라며 농성이라도 할 기세로 잔디밭에 드러눕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원래 생각과는 다르게 팀을 구성하게 됐다. 그러면서 그동안 늘 한 팀으로 호흡을 맞춰 오던 승민이와 정우를 갈라 놓은게 사달이 났다. 평소 민첩한 동작과 적극적인 대쉬로 수 많은 골을 태클로 저지하고 온 몸으로 막아내, 이미 우리들로부터 그 실력을 인정 받고있던(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내 편인게 너무 다행인 사람..) 정우를 같은 편이 아닌 상대로 맞서는게 승민이에게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몇 차례 몸 싸움과 강력한 태클에 번번히 제지 당하자 침울해진 승민이.. 반칙을 했네 안했네 하며 옥신각신 하더니 내게로 와 정우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때리고 머리를 들이밀어 부딪쳤는데 왜 반칙을 선언하지 않냐고 따져 묻는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원래 축구라는게 몸싸움이 없을 수 없고 정우도 반칙이 아니라는 태도인데, 그걸 승민이의 아빠인 내가 문제 삼으면 정우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할게 뻔하기에 오히려 승민이에게 핀잔을 주며 "아빠가 무슨 눈이 몇개 더 달린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걸 일일히 다 보겠어? 아빠가 심판이야? 아빠도 같이 뛰고 있잖아." 하며 애써 무시하고 공쪽으로 뛰어가는데 멀리서 슬쩍 보니 여전히 울먹이며 내쪽을 빤히 쳐다보며 서있다. (어쩌랴 자식인걸~ㅋ) 하는 수 없이 "알았어~ 아빠가 좀 더 자세히 볼께" 라고 못이기는 척 한마디 해주자 그제서야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승민이..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이번엔 민지까지 가세해 상황을 거칠게 제연하며 또 반칙을 했다고 주장한다. 정우와 같은 편인 현빈이는 정당한 몸싸움이었다며 정우를 두둔하고.. 결국, 어깨가 아닌 팔꿈치를 사용했으므로 반칙이라는 나름 논리적인 요구를 수용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이에 페널티킥을 선언했지만.. 황금같은 기회를 골로 연결 시키지 못한 승민이가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왜 아까도 몇번씩이나 반칙을 자행(?) 했었는데 그때는 그냥 넘어 갔느냐는 불만과 막상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골을 넣지 못한 자책이 뒤섞여 참았던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저번주에는 민지가 자책골을 두 번이나 넣는 바람에 경기에 졌다며 정우가 억울해하며 울더니.. (쩝.. 어렵군, 어려워..)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과 내 맘을 몰라주는 사람들 때문에 분하고, 억울하고, 마음 상하는 일이 어디 한 둘인가.. 오늘 승민이가 흘린 눈물의 의미는 상황을 주의깊게 그리고 정확하게 지켜보고, 모두가 납득하는 합당한 판단과 결정을 내려주는 공정한 심판의 부재를 통감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런 눈물이리라.. (오버다 오버~ ㅋㅋㅋ)

"승민아,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네가 생각지도 못한 불합리한 일들이 종종 생긴단다. 네가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주위 환경이나 사람들이 네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도,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하지만 승민아, 그렇다고 그럴때마다 매번 화내고 짜증을 낸다면 좋은 쪽으로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어.. 외려 바뀌는 건 너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좋았던 감정의 변화고, 바뀌는 건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너의 순수한 마음의 변화야. (슬픈 일이지..ㅠㅠ) 짜증이나 화는 '나는' 게 아니고 '내는' 거란다. 결국, 네 생각과 의지에 달린 거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소한 감정에 너무 휘둘리지 않는 '대범함'을 갖추길 바란다.. 승민아, 자신있지? ^^"


추신
아이들의 열광적인 추종(현빈이만 빼고.. 기억할께~ 현빈아~ㅋㅋ)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4:2로 졌다는.. (우수수 추종자들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군.. 다음주에는 승민이와 단둘이? ^^;)
근데, 승민아.. 음... 페널티킥은 연습 좀 해야 되겠던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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