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4일 목요일

'독서는.. 행복이다'

승민이가 광주 이모네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면서 풍선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그게 너무 부러웠던 영민이.. 한참 책 읽기에 심취해 있는 승민이 옆에 붙어 "오빠, 이 풍선 어디에서 샀어?"
승민이 방해하지 말라는 말투로 "어디에서 샀어.." 영민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책만 바라보고 있다.
"그러니까~어디에서 샀냐고~" 영민이 목소리가 조금 커진다.
"어디에서 샀어!" (그냥 말해주면 될걸 왠 고집? 이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지켜보기로 한다.)
저를 무시하는 듯한 오빠의 태도에 바짝 약이 오른듯 단어 하나 하나 힘주어 거의 고함을 지르는 수준으로 "그니까, 어디에서! 샀다고! 말하지! 말고! 어디에서 샀냐고~~!!"
"너가 계속 그렇게 시끄럽게 물어보니까 말해주기 싫어!" 승민이도 고집을 꺽지않고 목청껏 내지른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끄덕끄덕 고개를 45도 정도 왼쪽으로 기울이고 검지 손가락으로 풍선을 가리키며 다그치듯 계속 물어보는 영민이(^^;) "그러니까~~ 어디에서 샀냐고~!!"
결국, 승민이 못참겠다는 듯 화난 표정으로 "토성에서 샀어! 우주에서 떨어졌다!!"
이 대목에 이르자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ㅋㅋㅋㅋㅋ

매주 수요일 축구를 하는데 방금 막 공을 차고 땀에 절은 몸으로 집에 돌아 오자마자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쳐든 승민이에게 재경이 "승민아, 먼저 씻어야지!" 라고 말하자 "아까, 이 책 다 읽고 씻는다고 말 했잖아~" 엄마는 왜 자꾸 귀찮게 하느냐는 듯 불만이 가득한 말투다. 아마, 돌아오는 동안 먼저 씻기를 두 어번 권유 했었나보다. "어..? 그.. 그래.." 승민이가 너무 진지하게 눈을 빤히 쳐다보며 얘기를 하는 통에 무안스럽기까지 했더라는.. ^^;


방학동안에 다소 느슨해졌던 생활 패턴이 완전히 다시 자리 잡힌 승민이는 요즘 책에 푹~ 빠져 있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책만 읽은 날도 있다.) 너무 빠져드는 나머지 이와 같이 동생과 엄마를 무안하게 만드는 일이 종종 생긴다.
한동안 그리스 로마신화에 심취해 있더니, 요즘은 한국사가 그리 재미있는지 거실에 온통 한국사 연표를 쫘악~ 펼쳐놓고 들여다보길 한참.. 거의 줄줄 외우다시피 하고 있다. 덕분에, 북한의 정식 명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걸 알게 됐다며 재경이도 대견해 한다. 놀라운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책에 나온 역사적 사건이나 등장 인물들의 행적을 토대로 나름의 판단을 해서 곧잘 말하곤 하더라는 것. 어제는 이제 세계사에 대해서도 궁금 하다며 알고 싶다고 책을 더 사달랜다. (더 이상 꽂을대도 없는데.. ㅋ)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오빠의 영향일까? 도서관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책을 친구처럼 가깝게 만든 엄마의 영향일까? 영민이도 독서 습관이 제법 잡혀가는 모양이다. 집중력도 좋아지는 듯 하고.. 물론, 승민이와는 다르게 책을 읽고 또 읽어주는 동안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묻고 답하는 적극적인 소통을 원하는 영민이가 제 오빠에 비해 품이 많이 들긴 하지만.. 무엇보다 '책 속에 길'이 있고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나는 바로 이런 아이들 모습에서 가장 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독서는.. '행복'이다.^^ (승민아, 그렇다고 구몬을 2주째 밀리는건 좀.. ^^; ㅋㅋ)

'부모는 아이가 비록 흥미를 보이지 않을지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시켜야 한다.' <아들을 공부하라>


추신
<안나 카레니나>를 시작으로 며칠 전부터 다시 고전 읽기를 시작했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바뀐 적이 없는 삶의 근본적 문제들.. 이들 문제에 대한 고민과 답을 담은, 세월의 흐름과 사람들의 의식 변화를 다 견디고서도 무언가를 발견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책을 고전이라고 얘기하지 않던가.. 두달 전부터 조카들과 매주 한 차례 시사 주간지를 읽고 지금 현실속에서 생생하게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보다 깊이있는 지식의 습득과 동시에 비판적 시각을 길러보자는 취지로 토론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 달에 한 편 정도 고전을 함께 다뤄 보는것도 괜찮을것 같다. 아니, 꼭 해야될것 같다. 한창 변화의 시기에 감정의 표현과 소통의 방법을 몰라 날뛰며 방황하고 있는 한 마리의 '망아지'를 위해서..



댓글 6개:

Oldman :

평소에 부모님의 책읽는 모습에서 자녀들이 배우고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 하는 것 같아 부럽습니다. ^^

tomyou74 :

적게 말하고 많이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항상 보내주시는 칭찬과 관심 감사드립니다. ^^

Passion :

가까운 곳에 무한 샘물이 있는데도 그걸 활용 못하는 나는... 뭥미 ~

tomyou74 :

자주 데려가고, 자주 보여주시길.. 아이들의 몸은 먹어야 자라고, 마음은 읽어야 자랍니다.. ^^

Passion :

샘물 = 당신 !! 오키? ㅋ

tomyou74 :

치실 = 당신 !! 오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