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2일 월요일

'바보 Zone' by 차동엽

'바보란, 당신처럼 생각지 않는 모든 사람들..' -귀스타브 플로베르-

"승민아, 네가 아는것만 솔직하게 풀면 되는거야. 모르는게 부끄러운것도, 나쁜것도 아니라고 했지? 모르는건 안배워서 그런거야~ 모르면 배우면 되지. 승민이가 모든걸 다 아는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다 알면 뭐하러 배우러 다니겠어?" 수개월 전부터 '엔터스터디'에 실린 내용을 관심있게 지켜보던 재경이가, 때마침 승민이 또래의 아들을 이번에 '시매쓰'에 보내게 된 친구의 소개로 상담을 받으러 가는 차 안에서 "테스트? 무슨 시험인데? 어려워? 어떤 문제가 나오는데? 못풀면 어쩌지?" 라며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살짝 흥분에 들떠 이것 저것 물어보는 승민이에게 차분하게 얘기한다.  
"승민아, 네가 결정하는 거야. 가서 새로운 선생님도 만나보고, 분위기도 느껴보고, 또 테스트도 한번 받아보고.. 점수는 중요한게 아니야. 네가 알고있는걸 최선을 다해 보여주면 되는거지. 그리고 엄마, 아빠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네 맘에 안들고 네가 싫다고 하면 안할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네 생각이야."

친구가 소개를 하면서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아이"라고 칭찬을 했었는지, 어떤 아이일까?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다는 원장님 말씀에 내가 더 걱정이 됐었다. 사실, 그동안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 늘 가까이 지켜본 바로는 잘 크고 있다는게 확실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는 이유로 획일적이고 계량화된 시험을 통한 객관적인 평가를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고, 또래 집단 아이들과는 현저히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방향성의 가치를 미약하나마 수치로 파악할 수 있는 진단 결과가 자못 궁금하던 터였다. (이런 종류의 테스트가 승민이의 모든 걸 반영할수도, 파악할수도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
30분의 테스트와 약간의 시간이 더 지난 후, 결과를 손에 들고 오신 원장님께서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참.. 좋네요." 라고 운을 떼신다. "제가 이곳 순천에 와서 백명 이상을 테스트 해봤지만, 이런 케이스는 처음 입니다. 전 분야에서 고르게 우수하네요. 교육을 아주 잘 받은 것 같습니다. 특히.. 아이가 참 밝고 긍정적이네요.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집중력도 좋고.. 너무 좋습니다."

물론, 그동안 묵묵히 실행해온 교육 및 생활방식에 대한 우리 부부의 판단과 결정에 단 1%의 의심이나 후회는 없었지만, 막상 이런 상황에서 과분할 정도의 칭찬을 받으니 '虎視'는 모르겠지만(ㅎ^^;) 그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한 '牛行'에 대한 작은 확인(?)과 격려를 받은 느낌에 감개가 가슴으로 부터 끓어 올랐다..
새로운 문제를 경험 했다는게 너무 행복한지, 돌아오는 길에 승민이가 하는 말 "엄마, 나 여기 다니게 될 것 같아. 재미있을것 같애~" ^^

"미치지 않고는 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홀로 걸어가는 정신이란,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출세에 보탬이 되든 말든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 정신이다.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이것 저것 따지기만 해서는 전문의 기예, 즉 어느 한 분야의 특출한 전문가가 될 수 없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이 바로 '癖' 이다." -정민-

바보 Zone.. 2006년 말, 처녀작이며 데뷔작인 '무지개 원리'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수년간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아 온 차동엽 신부님의 최신작이다. 근데, 바보라니.. 도대체 제목 만으로는 도저히 그 의미를 가늠하기 어려워서, 책을 펼쳐들고 그 뜻을 헤아려 보는데.. 역시나 삶의 지혜와 통찰로 가득하다. 당연히 역설적인 표현이자, 의미심장하게 제시한 '바보'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바보란..
이해타산을 모르는 사람,
발상이 자유로운 사람,
동정심이 유난히 많은 사람,
희생적인 사람,
순수한 사람,
그리고..
이 사회에 꼭 있었으면 하는 사람..
역사에서 위대한 발명, 혁신, 발견의 공을 세운 인물들을 보라. 그들의 창조적 발상은 하나같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기 일쑤였다. 오히려 '바보 같은 발상'이라 손가락질당하며 핍박받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때로는 그들의 창의적 도전이 기존의 사고, 관습, 제도 등에 구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대의 벽을 깨는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처럼 풍요로운 시대에 체계적인 교육과 넘쳐나는 지식으로 무장 했지만, 남의 시선에 얽매여 에너지를 소진하고, 남의 시선에 얽매여 신념을 접어야 하며, 남의 시선에 얽매여 꿈을 포기해야 하는 우리 현대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나는 나다'라는 바보의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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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Passion :

이런.. 위 내용에 다 해당되는걸 보니 나는 바보천치..

tomyou74 :

"바보란.. 이해타산을 모르는 사람, 발상이 자유로운 사람....." 이 부분을 말씀 하시는 거죠? ^^

Oldman :

고무적인 이야기를 들으셨네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tomyou74 :

'磨斧作鍼' 이제 시작인걸요.. 긴~ 호흡으로 즐기며 가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