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3일 금요일

'CHEAP : the high cost of discount culture' by Ellen Ruppel Shell

장면 1.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반품 받아 정상품과 혼합해서 재포장한 후 유통기한을 1년 연장 표시하여 전국 할인마트에 유통 시킨 업자들이 적발됐다. 특히, 이들은 유통기한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증정용과 시식용은 롯트번호 2번과 4번으로 표시하여 특별관리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면 2. 광명 이마트가 미국 쇠고기를 한우라고 팔다가 적발된 것과 관련, 직원 실수 라고 해명했으나 일부 언론이 2년 전에도 미국 쇠고기를 호주 쇠고기로 둔갑시켜 팔다가 적발된 사실을 지적하며 강한 의문을 제기,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식품유통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직원 실수'로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난이 확산되고 있다..

장면 3. 1kg에 3만원하는 블루베리 농축액 대신 색깔과 맛이 비슷하면서 가격은 6분의 1정도에 불과한 포도농축액에 설탕 등을 섞어 블루베리 100%로 만들었다고 속여 팔아온 업체들을 적발하는 과정에 유명 대기업도 포함되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다..

장면 4. 며칠 전 부모님과 대화 중 어머니께서 친한 단골 오리집 지난 달 매출이 작년대비 9백만원이 줄었다며 하소연 하더라는 말씀에, 근래 유행처럼 번진 저가 오리 고기집의 등장이 주 원인이라고 설명해 드리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수가 없었다.

장면 5. 친목 모임에서 화상 경마장이 화제에 올랐었다. 어차피 지방에 들어선다면 우리 지역에 유치하는게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여러모로 좋은게 아니냐는 어느 후배의 주장으로 촉발된 논쟁이 꽤 오랜시간 지속됐지만 이견을 좁히는데는 실패했다.


지역 경제라.. 그렇다면 까르푸로 시작된 대형마트의 입점이 이마트, 홈플러스까지 이어지면서 질좋은 일자리도 늘고 지역 경제도 살아났는가..? 반대로, 똑같은 품질의 오리를 그렇게 싸게 팔수 있었다면.. 그동안 단골 오리집은 우리를 속이고 폭리를 취해왔던걸까..?

사실, 소위 월마트로 대표되는 대형할인마트의 등장과 번성은 글로벌한 시대의 흐름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소비의 장이며 낙후된 일부 후진국을 제외하곤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가장 선진화된 유통방식이라 생각했었다. 그로 인해 필연적인 지역 재래시장 및 여타 상권의 붕괴가 변화를 거부하고 소비자의 욕구를 읽지 못한 '게으름'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 했었다.. 적어도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의 황당한 경험을 토대로 현실에 의문을 품고 진실을 추적하고 그 불편한 진실을 활자로 구체화 시키기 전 까지는..

저자는 수년 전 스위스 취리히에서의 그 황당한 경험을 이렇게 털어 놓는다.
'유럽은 대개 7시를 전후해서 가게 문을 닫는다는 사실은 20대를 유럽에서 보낸 나에게 익숙한 일이다. 금요일이면 해가 지기 전까지 주말에 필요한 물건을 미리 사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취리히의 동네 슈퍼들이 일찍 문을 닫는 일쯤은 유럽이니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술을 사려고 마음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당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술을 사기 위해 숙소 옆에 규모가 제법 큰 할인매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한 시간을 뒤져도 술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시내에 위치한 더 큰 매장에도 가보았지만 술은 없었다. 그리하여 이틀이 지나도 술을 사지 못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3일째 되던 날, 현지인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할인매장이 취리히 시내로 들어오면서 소상인연합 혹은 시민들과 충돌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알코올음료를 팔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슈퍼라고 생각하는 가게와 비슷한 것으로, 취리히에는 'COOP'이라는 간판을 단 가게들이 종종 있다. 원레 '쿱' 혹은 '코옵'이라고 불리는 가게는 cooperation에서 파생된 생활협동조합을 의미하지만, 취리히의 쿱은 소상인연합회에서 주관한 것으로, 구멍가게들이 큰 건물에 입점하여 일종의 백화점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을 의미한다. 취리히에서 술은 가족들이 운영하는 작은 슈퍼와 쿱에서만 살 수 있다. 소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침인 것이다. 내가 취리히에 체류하면서 스위스 경제를 이해하려고 하던 당시만 해도 스위스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불을 약간 넘었고, 스웨덴이 4만 5천불이었다. (당시에는 스웨덴이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였다) 대형할인매장을 24시간 돌리고 도시의 자영업자들을 무너뜨린 나라 중에서 잘살게 된 나라가 세상에 있을까. 참고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는 노르웨이다. 이 나라는 작년에 국민소득이 9만 5천불을 넘었다. 세계에서 가게 문을 가장 일찍 닫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식당업이 가장 덜 발달한 나라이기도 하다. 노르웨이의 국민소득이 스위스나 스웨덴보다 다소 높아진 데는 저가 취급받던 북해산 원유의 가격이 지난 수년간 급등한 이유도 있지만, 가장 일찍 가게 문을 닫는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살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유럽의 경우, '까르푸의 나라'인 파리에서조차 까르푸가 도심 내로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들어간다고 해도 주차장 사용에 제약을 가하거나, 취리히처럼 알코올 음료 즉, 술을 아예 팔지 못하게 한다거나, 영업시간을 줄인다거나 하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타협이 벌어진다. 도대체 유럽의 소비자들은 어떤 바보이기에 그런 이상한 제약을 받아들였을까? 그들은 정말 바보였을까?'

'한국에서 한동안 카드 할인 포인트와 제휴하면서 동네 빵가게가 "죽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부에서는 엄살이라고 했지만, 정말 많은 빵가게가 죽었고, 소박하지만 맛있는 빵을 그날그날 구워 팔던 동네 제빵사들이 한국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이제 우리는 제빵사 단기연수를 받은 뒤 빵의 재료를 납품받아 구워 파는 사람들의 들쭉날쭉한 빵을 먹어야 하고, 그나마 빵 종류도 줄었다. 빵가게 주인이 특히 잘 만드는 빵이 동네마다 있었는데 그게 사라져버렸다. 빵장수의 비유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얘기다. 우리는 예전보다 빵을 더 많이 먹지만, 사실은 더 맛없는 빵을, 그리고 결국에는 더 비싼 가격에 사먹게 되었다. 도대체 돈은 누가 가져가고, 이익은 누가 보았는가? 한국에 밀가루를 파는 해외 곡물상만 돈을 벌었고, 그 곡물펀드에 투자한 펀드들만 돈을 가져갔을 뿐, 카드사나 빵집이나 국내 소비자나 장기적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국 공장 근로자들에 대한 심한 착취와 미국 중산층의 위축은 동전의 양면이다. 저렴한 연료, 저렴한 대출, 저렴한 소비재는 결코 구원의 손길이 아니다. 오히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기로 계약을 맺은 파우스트처럼, 우리는 할인과 파우스트적인 계약을 맺음으로써 최악의 경기 침체가 발생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염가를 추구하는 경제 분위기는 혁신을 저해하고 한때 번영했던 산업들을 무너뜨리며, 장인의 솜씨라는 자랑스러운 유산을 위협한다." 선뜻 이해하기도 동의하기도 어려운 얘기 같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자. 자본을 가진 대기업들이 가격 경쟁력만을 최우선 가치로 마케팅을 하고, 소비자들은 이에 환호하며 보다 싼 제품을 선호하고, 경쟁적으로 싼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제3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그로인해 대량 해고사태가 발생하며 중산층은 위축되고 전체 소비 활동이 감소되며, 생활이 어려울수록 더욱 싼 제품을 찾게 되고, 더욱 싼 제품의 공급을 위해 채산성이 악화되면 좀 더 싼곳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종국에는 말도 안되는 임금과 환경속에서 말그대로 착취 당하며 '싼'제품을 생산하는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환경파괴, 매점매석, 노동착취 등 실제 지금 이순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의 비윤리적인 경영 행태는 도를 넘은지 오래다.

'할인이 가정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꼼꼼히 살펴보면, 월마트 같은 할인업체에서 쇼핑한다고 우리의 생활이 정말 더 풍요로워질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할인점이 인플레이션 억제에 일조하고 있고 그 자체가 큰 의미일 수 있지만, 과거에 있었던 대공황은 인플레이션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디플레이션, 특히 임금 디플레이션의 문제였다. 최근 몇십 년 동안 임금 정체와 부채 증가로, 할인 판매는 그 어느 때보다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할인 구매로 절감한 비용은 주택비, 교육비, 의료비 같은 필수 요소들의 가격 인상분을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를테면 양말을 아무리 싸게 구입해도, 그것으로 차압이나 파산을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가족을 부양할 수도 없다. '검소'한 것과 '싼' 것을 좋아하는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더구나 더 큰 문제는 먹거리에 관한 문제다. 우리는 할인판매자들이 공급업체들로부터 간신히 최저가격에 제품을 공급받아 그 이익을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나누어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할인업체들은 이런 우리의 믿음을 배신한다.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의 충복이었던 영국 상인 '토머스 그레샴'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방식을 이론화했다. 그레샴이 예를 든 것이 물이 섞인 우유였다. 고객이 우유에 물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들은 물이 섞인 우유는 보다 싸게 구입할 것이고, 자신이 싸게 구입한 제품이 어떤 제품인지 정확히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물이 섞이지 않은 우유를 선호하는 고객들은 돈을 더 주고 물이 섞이지 않은 우유를 구매할 것이다. 아무도 속지 않고, 아무도 바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정직한 상인이 우유에 물을 섞고, 그 사실을 고객들에게 말하지 않은 채 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면 어리석은 대중들은 그 우유를 사고서 싸게 구입했다고 착각할 것이다. 많은 상인들이 우유에 물을 탄다면, 점점 더 많은 고객들이 순수한 우유의 맛을 잊어버릴 것이고 더 싼 우유, 즉 물이 섞인 우유만 구매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직한 상인들은 우유에 물을 섞지 않으면 사업을 접어야 하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다. 물이 섞이지 않은 우유는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고, 물이 섞인 우유가격은 올라갈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나쁜 우유가 좋은 우유를 몰아내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앞으로 몇 년 동안 다른 것을 경험하지 못하면 아마 물이 섞인 우유처럼 질이 떨어지는 제품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 결과 물이 섞인 우유가 그들의 기호에 꼭 맞는 우유는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참고 마실 수 있는 우유가 될 것이다. 오늘날 질 나쁜 옷, 믿을 수 없는 전자제품, 흔들거리는 가구, 의심스런 식품이 표준이 되고 있다. 우리는 우수한 제품을 구매할 때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제품들을 구매하지만, 정말고 싸게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나쁜 제품이 좋은 제품을 몰아낼 때, 우수한 제품을 위한 시장은 줄어들 것이고 우수한 제품들은 더 비싸질 것이다.'

경기침체의 근본적 원인이 인간의 비이성적이고 탐욕적인 욕구 때문이며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가 대기업과 대형유통업체들의 저가 전략이라고 저자는 폭로한다. 나름 '현명한 소비자'로 자평하며 소비자로서의 삶을 지향하지만 근본적으로 '노동자' 일수 밖에 없는 우리가, 단순히 가격만을 쫓은 '현명한' 소비활동 때문에 결국, 내 일자리가 날아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추신
이 책을 주위에 소개할 때 한동안 '적당한 가격'으로 제목을 잘못 얘기했었다. "결국, 적당한 가격이 돌아와야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다."는 저자의 결론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왼쪽 이미지는 한국어판 표지다. 일전에도 한번 언급했지만 참~ 수긍하기 어렵다. 물론, 기본적인 문장구조나 문화의 차이 등으로 직역이 마땅치 않거나 일치되는 단어나 문장이 좀 군색할때는 최대한 저자의 생각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의역을 하는게 자연스럽다 하겠다. 근데, 이건 뭔가? 본문 어디에도 '완벽한 가격'이라는 제목을 전면에 내세울만한 근거도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이건 심각한 오역 아닌가.. 하여, 나는 웬만하면 원서의 제목과 표지를 그대로 차용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표지와 제목은 사람으로 치면 첫인상을 좌우하는 얼굴이고 말투며, 입고있는 옷과도 같다. 자신 없으면 원서를 그대로 사용하면 되지 뭐하러 돈 들여 이렇게 왜곡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저자의 생각에 충실하자면 '적당한 가격'이 정답이다.

댓글 6개:

Passion :

최근 몇 년 사이에 '원가개념'이 의료시장에 나타나기 시작했죠. 비슷한 맹락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과도한 경쟁과 의료행위의 상업성을 부축이게 되었고 결국 그 피해는 의료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고 봅니다.
책 내용이 비단 유통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과 연관이 있을 것 같네요.
추천 바랍니다..

tomyou74 :

안그래도 '디지털화'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결국, 대기업들이 '기업가 정신'을 회복하지 않고 안전 위주로 서민 밥그릇만 빼앗으려할때 국가 경쟁력은 후퇴하고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진정한 '황금만능주의'로 가는거죠 뭐.. 쩝..
어떻게, 이번엔 한 8부 준비할까요..? ㅋㅋ

Passion :

자칫 딱딱한 내용이라 거부감이 느껴질 것 같습니다. 제가 먼저 접해 본 후에.. ㅎ
근데 갈 수록 report가 길어지네요. 마치 원서 읽는 것 같다는... ㅎ

tomyou74 :

140자가 편하긴 하죠..? 글쓰기의 최고 경지는 '시' 라는 말도있고.. 근데, 줄이는걸 더 어려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던데..

Oldman :

이곳 미국에서도 어느 동네에 월마트가 들어 오면 지역의 중소상인들이 싹 쓰러지고 맙니다. 월마트에서 신선하고 싼 채소, 금방 구워낸 빵에서부터 TV, 자전거, 조제약, 안경까지 안 파는 게 없으니 그 영향을받지않는 사업체가 없지요.

그래서 월마트가 들어온다고 하면 지역주민을의 공청회를 꼭 거치게 되어 있는데 주민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싼 가격, 많은 일자리창출에 팔려 허락을 하게 됩니다. 그리곤 몇 년후 자신들의 가족구성원들이 속속 문닫는 중소상회로 부터 일자리를 잃는 것을 보고는 뒤늦게 가슴들을 치게 됩니다.

저 한사람이라도 지역에 있는 소규모가게들을 돈을 조금 더 주고라도 사용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걸로 그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구요. ㅡㅜ;

tomyou74 :

원조 'discount culture'의 나라에 살고 계시는군요. 자유를 맛본 지니가 스스로 다시 램프속으로 들어갈리는 없고..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